영국의 왕 찰스가 수트를 맞춰 입는, 그 뿐만 아니라 영국 역사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 윈저공도 팬이었던 ‘Anderson and Sheppard’ 라는 비스포크 테일러 브랜드를 아시나요? 한국에서는 ‘Unipair’ 에서 이 앤더슨앤셰퍼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6개월에 한번씩 열리는 트렁크 쇼 때문에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는 앤더슨 앤 셰퍼드팀은 항상 올 때마다 빅라이츠를 방문합니다. 이들이 올 때마다 그 멋진 수트 차림에 눈호강을 합니다. 빅라이츠의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도 앤더슨앤셰퍼드의 근사함은 자체발광을 하더군요.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빅라이츠에 계시던 손님들도 모두 한참을 바라보시거든요. 물론, 영국의 수트 트렌드를 백 년전부터 리드하는 최고의 하우스답게 그 가격도 어마어마합니다. 여기서 만든 낙타털을 꼬아서 만든 코트는 소형차 한 대 값이라네요. 하지만, 이 코트를 사는 사람이 단지 돈이 그렇게 많아서 사지만은 않을 겁니다. 누군가에겐 그 가격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겠죠. 아마 그 분도 만원짜리 뭘 사는데는 일주일 고민할 거에요.
고백 아닌 고백으로 저는 얼마 전 제 위시 리스트의 물건 하나를 샀습니다. 제 위시 리스트는 어제 새로 등극한 물건부터 이십 몇 년 묵은 아이템까지 정말 끝도 없고 그 종류도 다양한 걸로 유명(?)합니다. 사실 ‘언젠가 이걸 다 사고 말거야!’ 라는 느낌의 리스트라기보다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들이 있으니 잊지 말아야지 같은 느낌의 리스트입니다.
거기에 올라와 있는 커틀러리 브랜드를 제가 드디어 샀다는 거 아닙니까! 독일의 Eichenlaub 아이쉔라웁이 그것입니다. 일본의 아트앤사이언스나 한국의 아스티에 드 빌라트 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1910년부터 대장장이가 하나씩 망치로 쇠를 두드리고 122단계의 공정을 (손으로만) 거쳐서 완성되는 식기들입니다. 포크, 나이프, 스푼, 디저트 스푼 네 개 세트가 사십만원 정도? 숟가락 한짝에 십만원을 태우다니 사장님 미쳤군요! 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괜한 고백 한번 더 하자면 몇년간 모은 카드 포인트로 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에게는 이 커틀러리가 십만원의 가치가 있는물건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개를 사는 것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골라서 다시는 같은 종류의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될만한 단 하나를 사는 데에 공들이게 되었습니다. 물건이 많은 건 싫지만 은근 쇼핑으로 자아실현을 (?) 하는 사람이 찾아낸 방법입니다. 옷이라면 패브릭을 보고, 차라면 오래 탈 수 있는 걸 고르고 싶어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가장 큰 가치는 이것이더군요. 오래 되었고 - 앞으로도 오래 간다는 증거죠- 나에게도 오래 갈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제 위시 리스트를 한번 다시 보았습니다. 지워지는 아이템은 그때 잠깐 눈이 돌아갔던 거거나 그보다 좋은 게 있는 것들입니다. ‘앤더슨 앤 셰퍼드’ 의 가장 멋진 부분도 같은 맥락이겠죠. 언제까지 입어도 좋을 한 벌, 그 안에 담겨있는 시간과 장인의 가치. 밖에서 절대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만 느껴지는 패브릭의 아름다움, 그 느낌만으로 혼자 뿌듯해지는 그런 거랄까요. 아, 이쯤에서 제 보물 리스트 중 하나 공개합니다. ‘이마바리’ 라는 일본 타월 조합인데 수건 하나에 1-2만원이지만 얼굴을 닦을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아무리 세탁해도 전혀 거칠어지지 않고 처음 그 모습 그대로 구름처럼 폭신폭신합니다. 수건 매니아가 자신있게 말합니다, 완전 강추! 평생 수건, 이겁니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영국 왕이 입는 수트라니, 낙타털을 꼬아서 만든 코트라니, 손으로 하나하나 두드려 만든 포크라니. 하지만 이 모든 좋은 게 다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겠죠. 누군가에게는 수천만원 짜리 코트가 인생의 물건이고, 누구에게는 수십만원짜리 포크가 인생의 물건이고, 만원짜리 수건이 그것이기도 합니다. 가격은 다르지만 나에게 주는 의미의 크기는 같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 가진 것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좋은 물건이고, 또 그 가격을 지불할 만한 물건이죠. 그러려면 나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잠깐의 즐거움을 주는 소비를 줄이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소비도 줄이게 되겠죠? 진정한 소비요정이라면 쇼핑의 모토가 이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원하는 가치는 어떤건가요? 오늘 한번 생각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