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초의 내추럴 와인바를 2017년에 오픈할 때만 해도 인스타그램에 ‘#내추럴와인’을 검색하면 스크롤을 내릴 것도 없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내추럴 와인이란 단어는 더이상 전혀 새롭지 않아 이제 그만 빅라이츠의 수식어에서 내추럴 이란 단어를 뺄까 생각할 정도다.
내추럴 와인이 금방 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9 년전 나의 첫 경험은 한 모금만 마셔도 눈이 커지는, 이전에 알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맛 때문이었다. 입에 머금은 채로 천천히 생각해볼 필요 없이, 맛과 향이 강속구로 돌진해 짜릿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생기와 에너지는 그대로이지만 아주 클래식하고 진지한 내추럴 와인을 주로 마신다 (모든 내추럴 와인이 다 결함이 있거나 펑키하거나 시지 않다.) 좋은 밸런스와 클래식한 스타일에 생기와 에너지가 더해져 이거야말로 ‘클래식한데 한 끗이 다른’ 와인이다. 요즘 가장 사랑하는 타입의 내추럴이다. 건강한 땅과 포도에서 나온 에너지와 메이커의 고집 플러스 철학이 이 액체를 통해 전해지면서 우리가 포도주에 기대하는 매력을 다른 차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와인의 문제는 와인 리스트를 보면 우리 모두가 얼어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추럴은 가끔 듣도 보도 못한 로컬 품종을 쓰기도 하고, 아는 품종이라 해도 “메를로 맛이 나서 메를로라 한 것인데” 같은 장금이적 시점이 안 통하기도 한다. 어떤 소비뇽 블랑은 소비뇽 블랑의 교과서 같은데 어떤 애는 복숭아 통조림 같은 맛이 나고, 또 다른 소비뇽 블랑은 호박엿 맛이다. 도대체 어떻게 고르라는 거냐고? 당연한 말이지만 소믈리에에게 도움을 구하면 된다.
고작 ‘물어보라’는 게 결론이냐고 화내지 말고 진정하길. 아직 끝이 아니다. 이제부턴 당신의 테이블에 당도한 와인 한 병이 머릿속에 기대한 맛과 가까워지는 방법에 대해 말할 것이다. 사다리 타기 같은 운칠기삼 주문 말고, 새로운 앱 회원 가입처럼 따라하기만 해도 주문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보통 빅라이츠에서는 온 손님들에게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개성 있는 스타일 or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스타일?” 재미있게도 대답은 반반이다. 역시 세상은 늘 총량불변의 법칙에 지배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신이 호불호 확실한 와인 러버라면 클래식한 스타일의 내추럴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작은 디테일을 챙겨가며 자기 취향을 쌓아온 당신이라면, 내추럴 와인이 가진 섬세한 ‘다름’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 잔을 불빛에 비춰보면서 가죽 향이 어쩌고 라즈베리 향이 어쩌고 하는 게 닭살 돋는다고 생각하거나, 와인 리스트 까막눈이거나, 와인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의 와일드한 모험을 떠나라고 하겠다. 와인도 재밌는데, 라며 짜릿한 경험을 한다는 데 내 왼손목을 걸 수 있다.
이제 첫 관문은 넘었다. 그 다음으로 당신은 이런 문장을 말할 수 있다. “xxx한 맛은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지만, 뭘 싫어하는지 잘 아는 사람에게는 더 큰 애정이 있다! 농담이 아니라, 대단히 경험이 많지 않다면 맛에 있어선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걸 설명하는 게 쉽기도 하다. 모두가 좋다고 해도 나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맛도 있는 법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Do’가 있으면 ‘Don’t’도 있겠다. 이 말만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하는 하나, “드라이한 와인이요.” 물론, 해도 되는데 그 뒤에 당신이 좋아하는 맛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길. 앞서 예를 든 게토레이나 복숭아 통조림같이. 더 나아가 ‘마른 오징어처럼 짭짤한 맛’을 좋아한다고 해도 당신을 비웃는 추천자는 없다. 오히려 이런 주문이 당신이 상상하는 내 타입의 와인과 눈 앞에 등장한 와인 사이의 간극을 줄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와인도 술이다. 즐거워지려고 마시는 거고, 마셔야만 즐거운 거다. 다 읽었다면 이제 저 위의 헛소리 따위 모두 잊고 이제 마시자. 항상 오늘의 와인이 어제의 와인보다 맛있기를!
-2018년 11월 하퍼스 바자 기고문을 조금 수정했습니다-